자작시

큰 형수의 추억

장봉이 2010. 8. 26. 13:15

 

 

              큰 형수의 추억

 

                           장봉이

 

향기롭던 스물다섯 새색시가 장씨 집에 시집 와

열세 식구 호구 위해 나물죽과 보리밥만 해대기가

삼복날 화독에서 피어나는 연기보다 더 맵고 눈물난다.

왕거미처럼 줄치듯 열심히 살아도 먹는 것은 맨날

공허한 곤궁의 주린 배들 뿐 이였다 

그러니 큰형수의 가난한 목구멍엔

명절 생일 날도 기름 두룰 일 없었던 것 같았다

쌀독마저 밑구멍이 찢어져라 비어져 가는 날이면

큰형수의 온 머리와 몸의 반이 바닥까지 들어 가도

곡식 알맹이 한 알 건지기가 힘겹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빈 솥에 물을 끓이면

눈물과 수증기를 삼키며 울먹여야만 했던 우리 큰 형수

사시사철이 있으면 뭣하랴, 멋 한 번 부리지 못해

분칠 같던 얼굴은 불에 그을 린 솥 밑창 같고

옥수 같던 두 손은 두꺼비 등처럼 되었건만

남편이란 사람은 사랑방에서 공부만 한다며 나오질 않으니 

평범한 아녀자로 살아 가길 바라는 작은 희망도 못 이뤄

오늘이나 어제나 항상 창백한 묘비 처럼 살으셨다.

그놈의 무명 저고리는 매일 매일 기워 입어도 찢어지고

길게 휘어져 늘어져만 가는 고달픈 시집살이는

자식 뺨에 흐르는 배고픔의 눈물도 딱아 주지 못하여

낮이고 밤이고 서러움으로 억척스레 이어 갔던 날들

지금처럼 달라진 세월에도 뼈에 박힌 가난함 때문에

쌀밥 한 그릇도 신을 모시듯 정직하게 드시던 큰형수는

팔십을 바라 보는 세월 앞에 남편과 자식들의 성공을 보며

소중했던 큰형수 만의  추억을 하나 둘 지워 가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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