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스크랩] 시인의 독백
장봉이
2012. 11. 29. 10:24
시인의 독백
중보 장봉이
시인으로 살기를 작정한 날부터
내 입은 너무나 무거워 졌다
시인이 되면
저절로 글이 쓰여 진다는 것도
그저 풍문이라는 것도 알았다
나는
한 어의 시구를 붙잡기 위해
여우가 수 백 번 넘게 파 헤쳐 놓은
나의 뇌 무덤을 지겹도록 돌고 돌다가
대륙을 건너온 뜨거운 비처럼
손으로 문지르며 비를 말렸다
비를 말린 여우의 흔적들을
컴퓨터 키보드 위에 올려 놓고
퀭한 눈으로 조준을 하며
피냄새를 풍기는 사냥꾼이 되어
죽이거나 놓치거나 살리거나 해야 했다
시인이 하는 일이란
해가 지겹도록
달이 지겹도록
글과 마주 앉아 뜨고 지는 글의 반복
용의 비늘처럼 자꾸 커가는 글의 공포가
서울로 가는 길을 잊게 해도 좋다
살 속을 파고드는 손톱의 아픔처럼
오늘도 죽지 않을 만큼만 감뇌한 나의 글을
기록만 할 수 있다면 그저 행복할 뿐이다.
출처 : (사)한국평생문우협회( 인터넷 작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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