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사랑
장봉이
1974년 제2하사관 학교에 들어 갔을 때다. 6주 뒤면 면회가 허락 됐지만 내 고향 양평에서 훈련소까지는 먼 거리이기에
그저 하늘만 쳐다보며 부모님이 면회 오시길 바랬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정말 아버지가 면회를 오셨다. 누리끼리한 삼베 한복 차림으로 빵과 우유가 가득 든 봉투를 손에 쥐시고.......... 함께 걸으며 어머니 안부와 가족 이야기를 나누다 "아버지, 내일 다시 와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부탁했다.
누군가 면회 오면 잡초 뽑는 일에서 제외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마."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는 다음 날 면회를 오셨고 덕분에 편한 일요일을 맞았다.
7년이 지나 전역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님과 살았지만, 나 역시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사느라 효도는 늘 생각 뿐이었다.
그러나 이별은 갑자기 찾아 오는 법,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져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셨다.
장례를 마친 뒤, 어머니가 그때 이야기를 해 주셨다. 아버지는 면회 오기 전 근처 가게에 들러, 주인에게 뭘 가져가면 좋으냐고 물어 빵과 우유를 사셨단다. 그런데 다른 부모님이 통닭이며 불고기 등 진미를 싸 온 걸 보고 미안하셨다고, 또 허겁지겁 빵 먹는 아들 모습에 가슴 아프셨다고, 그런데다 가진 돈이 이삼천 원밖에 없어 기차역 대합실에서 새우잠을 주무시고, 면회 뒤 집까지 걸어가셨단다, 6,25 피난길보다 고생스러웠다는 이야기에 눈시울이 뜨거워 졌다.
아버지의 묵직한 사랑은 힘들 때마다 뜨거운 힘을 준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