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기행

[스크랩] 문학기행 거제 모꼬지/글 한판암

장봉이 2012. 9. 25. 13:28

 

2012년7월22일 10시00분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문학기행 거제 모꼬지/글 한판암

2012.7.7-8일(1박2일)거제도 펜션 마을 세미나 실 [문학의 밤] 및 [문학기행]

 

지척에 자리한 섬인데도 속세와 아득한 피안에 자리한 파랑새의 천국 같이 여겨지는 거제(巨濟)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칠월의 첫 토요일과 일요일(7-8일)에 걸친 1박2일의 여정에 경향각지에서 찾아온 쉰 남짓한 문인들의 모꼬지였다. 그렇다고 평소 치열하게 문학에 대해 갑론을박하며 익숙해진 문우이거나 동문수학한 도반의 도타운 여정의 나들이가 아니었다.

 

 

    이번 기행은 여태까지 경험했던 모꼬지에 비해 판이한 성격으로 쉬 경험하기 어려운 여정이었다. 통상적인 문학기행은 같은 둥지를 모태로 등단했거나 동문수학했던 도반이 무리지어 떠나는 게 뿌리 깊은 관행이다. 한데, 이번에는 서로의 둥지가 다르고 문학적 맥락이나 뿌리가 다른 세 그룹이 하나로 의기투합했던 모임이다. 색깔이 다르고 뿌리나 배움이 다르면 버긋할 것이라는 우려를 거뜬히 불식시킨 알차고 보람된 모임이었다.

 

     어떤 집단을 막론하고 정성적(定性的)으로 완벽하게 화합에 이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대학 교수가 모인 자리만큼 개인 색채가 짙은 집단은 없을 것이다. 같은 전공을 하는 사이라도 완전히 일치하는 경우가 없는 까닭인지 자존심이 강하고 타인을 배타시하려는 까칠한 기질 때문에 여럿이 모이면 거개가 여지없이 모래알을 한데 모아 놓은 모양새이다. 그 꼴과 호형호제할 정도로 개성이 뚜렷하며 자존심을 생명같이 여기는 문인 또한 별반 다름이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종합문예지인 ‘문예감성(최채규 발행인)’을 위시해서 ‘글동네 2002(소설가 박서영 대표)’와 계간지인 ‘詩와 늪(배성근 회장)’에 둥지를 틀고 활동하는 문인들이 의기투합했다. 그들이 배가 맞아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에 소재한 ‘거제 펜션 마을’에서 어깨동무를 하고 개최한 문학기행이 변화를 갈구하는 신선한 바람의 증좌이리라. 이 모임의 총괄은 ‘詩와 늪’ 배성근 회장이 담당했고, 실무는 탯자리는 물론이고 똬리 튼 둥지가 거제인 ‘문예감성’ 김종일 문인협회장이 주관했다.

 

    입때까지 문학기행에서 몇 단체의 식구들이 함께 자리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거개의 문학모임은 다른 집단에 다가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거나 특정 현안을 두고 함께 고민하는 대승적인 모습보다는 ‘끼리문화’에 길들여졌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퇴행(regression)의 수렁에 빠져서도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퍼스트무버(first mover : 선도자)인양 엘리트 지배주의(elitism)를 부르짖는 경우가 숱하다.

 

   모태가 다른 독립체의 만남은 소통을 선결충족조건을 전제로 한다. 그러므로 세 단체의 만남은 서로의 무릎을 맞대고 마음을 활짝 열고 서로에게 다가서서 문학에 대한 생각이나 가치관을 비롯해 삶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통해 소통하며 공감대를 넓히면서 ‘공통의 장’을 창출해내기 위한 첫 시도이다. 서로 다른 내(川)를 통해 흐르던 생각이나 소리는 하나의 여울목에서 만나 합수(合水)되면서 크고 작은 엇박자가 발생하리라. 이 과정에서 때로는 파열음이나 불협화음이 나타나더라도, 커다란 강물로 거듭 태어나서 도도히 흐를 대장정의 서막이며 탄생의 아픔이기에 ‘찻잔 속에 태풍’ 같은 산통(産痛)이지 싶다. 좀 더 큰 세상과 한층 승화된 문학 세상의 태동을 위한 첫 시동이 미진하고 아쉬움이 남더라도 내일의 승화된 세계를 위한 희망가를 부르는 엄숙함이 충만했다. 낯선 걸음마라서 야무지지 못한 측면이나 아쉬움이 따라 마뜩찮아도 그 진정한 열정과 참신성은 조금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행사 일정의 요약이다.

 

 

     첫째 날(7일) 행사의 제1부 첫째 마당으로 거행된 개회식에서는 여러분들의 축사에 이어 개회사가 있었다. 그리고 계간지 ‘詩와늪’ 제 16집 출판기념 행사와 우수시인에 대한 ‘이달의 작품상’이 수상되었다. 이어지는 자리에서는 함께한 대부분의 시인들이 참여하는 자작시를 낭송하거나 낭독하며 소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소통의 장이 펼쳐졌다. 이 자리에 멋과 맛을 위해 준비된 아름다운 영상과 배경 음악이 흘러 한층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적어도 서른 이상의 시인이 참여했음은 뜨거운 열기를 대변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상당히 긴 시간 행사가 지속되어도 진지한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자고로 모든 잔치를 성패로 이끄는 기저에는 먹거리가 지렛대 역할을 톡톡히 한다. 바닷가 동네에 사는 처지이지만 거제의 회를 비롯한 해산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싱싱하고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행사 첫날 저녁과 이튿날 아침과 점심으로 먹었던 외포리 ‘부두횟집’의 음식은 압권이었다. 첫날 만찬으로 나온 싱싱한 회와 멸치무침을 위시한 음식은 도시의 그것과 견주는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출중했다. 그리고 둘째 날 아침의 매운탕은 전날 밤에 여흥을 즐기며 과음에 이르렀을 호기로운 주당들의 불편한 속을 죄다 풀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또한 그날 오전에 몇몇 관광지를 둘러보고 늦은 점심으로 들었던 ‘물회’는 바닷가 내기인 내게도 엔간해서 맛보기 어려운 별식으로 각별했다. 이번 기행에서 나를 매혹했던 부두횟집의 빼어난 음식이 그리워서라도 불원간 거제를 다시 찾을 참이다.

 

    첫째 날 저녁 식사 후에 주어진 자유시간은 인위적인 틀이나 강제적인 규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자연스럽게 화제를 중심으로 무리지어 조곤조곤 담소를 나누며 주고받던 술은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야무지게 해냈다. 술 쪽에 거리가 먼 축들도 동석해 얘기를 거들거나 담론을 이끌어 문학이라는 공통분모로 하여 수렴하는 대승적인 자세를 보여줘 무척 훈훈했다.

 

     둘째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박경리 기념관, 거제에 자리한 유치환 생가, 남부면 순환도로와 학동 몽돌해수욕장, 포로수용수를 겉핥기라도 둘러보려는 강행군이 이어졌다.

먼저 통영에 자리한 박경리 기념관(경남 통영시 산양읍 산양중앙로 173)을 찾았다. ‘토지’로 불멸의 금자탑을 쌓은 님의 얼과 흔적을 더듬으며 배우기 위함이다. ‘토지’는 최 참판댁의 가족사가 줄거리 축(軸)을 이루는 소설로 한국의 근대사를 아우른 작품이다. 이 소설은 19세기말부터 해방에 이르는 시대를 아우르고, 공간적으로는 평사리에서 출발하여 만주와 서울 그리고 동경까지 무대로 등장했다. 우리의 근대사의 단면을 오롯이 담겨있는 작품을 통해 님의 혼과 정신의 편린이라도 제대로 깨우친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음으로 거제(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에 소재한 청마 유치환 시인의 생가를 찾았다. 넓게 발달한 벌판에 자리한 동네에 다소곳이 자리한 생가는 오래된 동네가 분명해도 변화에 굼뜬 농촌 모습 그대로였다. 기념관 바로 옆에 우뚝 자리 잡고 수백 년 마을 지킴이 노릇을 해왔을 노거수(老巨樹)인 ‘팽나무’*가 마을 역사를 웅변했다. 님은 시의 기교나 표현에 억매이지 않고 생에 대한 의지를 진지하게 추구해다는 세평(世評)을 듣고 있으며 ‘깃발’, ‘파도’, ‘행복’, ‘생명의 서’ 등을 비롯한 주옥같은 작품을 많이 남겼다. 특히 ‘이영도님과 사랑’에 대한 연분홍빛 사연은 너무도 유명하게 회자되는 전설이 되었다.

 

     그리고 남부면 해안도로를 지나며 학동 몽돌해수욕장에 잠시 들렸다가 곧바로 6.25전쟁의 참혹사의 단면이 생생히 살아 숨쉬는 ‘포로수용소’를 둘러봤다. 그 뒤에 길을 서둘러 외포리 부두 횟집에 도착해 늦은 점심으로 ‘물회’를 즐겼다. 아마도 이날 ‘물회’는 이번 나들이 먹거리 중에서 단연코 화룡점정(畵龍點睛)이며 백미이고 압권이었다. 점심 후에 아쉬운 작별을 고하며 각자의 둥지를 향해 떠나며 다음을 기약했다.

 

     처음 시도한 모듬 모꼬지 치고는 성공적이었다. 과욕을 부린다면 관광지를 돌면서 버스 속에서 주어졌던 참가자의 자유발언과 유사한 기회나 공통 관심사에 대한 특강과 토론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였지 싶다. 다양한 문학 집단이 만나서 소통을 통해 공감하며 ‘공동의 장’을 넓혀가는 과제는 이 시대 문인이 두 어깨에 짊어진 소명이 아닐까. 양적으로는 문인이 팽창하면서도 정체성을 확립하거나 지향 목표의 정립은 외면한 채 별것도 아닌 감투 같은 것에 모두걸기하며 이전 투구하는 추한 모습이 너무도 자주 빈발한다. 이러한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 송두리째 백일하에 드러나도 부끄럽지 않도록 지평을 바로 다지는 문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 너와 내가 가슴을 활짝 열고 소통과 공감으로 공동영역을 한껏 넓힐 슬기를 깨우칠 길을 간절히 희구하면서 맺는다.

 

 

*어느 개인 사이트의 ‘유치환생가 방문기’에서 ‘팽나무(Celtis sinensis)’를 버젓이 ‘느티나무(Zelkova serrata)’로 표기한 오류를 본 적이 있다./* 불편한 진실 : 이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미국에서 같은 제목(an inconvenient truth)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나온 이후이다.

2012년 7월 19일 목요일

자료재공:  시와늪 편집실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baekim2003@hanmail.net) 기자
이기자의 다른뉴스보기
수상섹션 목록으로

출처 : 시와 늪
글쓴이 : 배성근 원글보기
메모 :